벨라스케스의 제자 노예출신 화가 후안 데 파레하
후안 데 파레하는 노예였다.
벨라스케스의 작업보조 노예로 화가가 세비야에 있을 때부터 함께 했던 그는 항상 화가의 작업을 도왔다.
화가의 작업실에는 손이 많이 필요하다. 무엇보다도 물감을 준비하는 일은 쉬운 일이 아니다. 각종 색을 내는 가루를 구해오고 오일과 섞어 물감을 만들고, 너무 질지 않게, 마르지 않게 유지해야 할 뿐 아니라, 정확하게 필요한 색을 준비해야 했다.
쉽지 않은 일이었지만, 그는 그 일을 잘 해냈었고, 또 이를 통해 색에 대한 감각을 배웠다.
자신의 노예였던 후안 데 파레하를 그린 벨라스케스의 작품이다.
벨라스케스가 이탈리아로 떠난 두 번째 여행(1649-51)에서 이 작품을 남겼다.
당당한 자세와 우아한 자태, 꿇림 없이 우리를 바라보는 시선에서는 당당함이 느껴진다.
어느 누가 그의 자세를 보고 노예라고 생각하겠는가?
벨라스케스는 후안의 가능성과 눈빛을 읽었다. 그리고, 노예로서가 아닌 한 인간으로서 존중함을 표현했다.
그리고, 후안 데 파레하는 평범한 노예와는 다른 화가로서의 기질이 있었다. 하지만, 당시에 노예가 감히 붓을 든다는 것은 허락되지 않았을 뿐 아니라, 스페인 법으로도 노예가 예술의 영역에서 일하는 것은 허락되지 않았다.
벨라스케스는 그의 능력을 알아봤다.
그리고, 그의 능력을 펼칠 수 있도록 자유민으로서 허가를 해준다.
벨라스케스는 당시 펠리세 4세의 충실한 화가이자 유럽에서 가장 유명한 화가였다. 그에게 의뢰한 초상화 하나 정도 있어야 인싸로 여겨졌기에 그림을 그려달라는 각국 왕실과 귀족들의 요청은 줄을 잇고 있었다. 그뿐 아니라 그의 친구이자 멘토였던 루벤스 처럼 화가이자 외교관, 더 나아가 왕실 행사 관리의 역할까지 맡아야 했다. 이렇게 정신 없이 바쁜 그였지만 그는 주변 사람들에게 관심을 가지고 있었다.
그리고, 잠자는 시간까지 쪼개어 주변에 있던 그들의 그림들도 남겼다.
https://blog.naver.com/salabogo12/222078815962
화려한 왕실에서도 소외된 그들, 그리고 뒤에서 돕던 노예들.
그는 그들에 대한 시선을 거두지 않았다. 그저 일반적인 관심 정도가 아닌 인격체로서의 당당함을 표현하고, 그렇게 인정했다.
벨라스케스의 허가로 자유민이 된 후안 데 파레하는 결국 화가로서의 꿈을 이루게 된다.
그리고, 그의 작품은 프라도 미술관에서 만날 수 있다.
후안 데 파레하의 '그리스도의 세례'라는 작품이다.
빛과 어두움의 강조와 다양한 색채의 표현은 바로크 양식의 화려함을 드러내고 있다.
'마태를 부르심'이라 불리는 작품이다.
후안 데 파레하는 예수 그리스도와 성경의 이야기를 그렸지만, 그림 속에 등장하는 사람들은 당시 유럽과 스페인 귀족들의 복장을 하고 있다.
자신이 아는 것을 그리던 시대에 그 역시 자신이 본 것을 그리고 있다.
후안 데 파레하는 그의 주인이자 스승이었던 벨라스케스에 대한 존경함을 그림에 담고 있다.
벨라스케스의 브레다성의 함락과 시녀들에 등장한 관객을 바라보는 이를 자신의 작품에 그려 넣었다.
관객을 응시하는 눈빛의 깊이는 차이가 있지만, 스승의 작품을 오마주함으로 자신을 해방시킨 위대한 화가를 향한 존경과 애정을 담아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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