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espania

마드리드 프라도 미술관 프란치스코 고야의 시선 #왜 그들이 한자리에

by 0** 2021. 3. 14.
반응형

까를로스 4세 스페인 왕가의 가족 초상화를 그린 프란치스코 고야의 시선을 함께 따라가 보자.

그가 그리고자 했던 건 왕실 가족이었을까?

당연히 그들이 모두 그려져 있었으니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하지만, 가족 초상화라는 것은 현실을 그리는 것이 아닌가?

1800 La familia de Carlos IV 프란치스코 고야 (마드리드 프라도 미술관)

 

그림 안에 왕실 가족의 각자의 위치는 그렇다곤 치더라도 시간의 시점도 이상하다.

 

* 누가 주인공일까? 까를로스 4세 가족 고야의 왕실 초상화

 

스페인 화가 고야 #까를로스 4세 가족, 누가 주인공일까?/왕실 초상화

왕실 가족들을 그릴 때, 모두들 모아 한꺼번에 그릴 수가 없다. 사진 찍듯이 한 번에 할 수 없기에 사전에 한 명씩 만나 각자의 초상을 그린다. 그리고, 한 명씩 자신의 머릿속으로 불러내어 함께

dondevoy.tistory.com

 

그림 속의 인물들을 모두 한자리에 모아놓고 단체 사진 찍듯이 할 수 없다고 전 포스트에서 설명했다.

한 사람 한 사람씩 각자의 초상을 그리고 나서 단체 초상을 완성시키는데, 문제는 인물들의 면면이다.

까를로스 4세의 동생 Antonio Pascual 과 그의 아내 Maria Amalia

 

왕에 뒤에서 우리를 쳐다보는 한 남자가 있다.

그는 까를로스 4세의 동생 안또니오 파스쿠알로 당시 마드리드 시장이었다.

무능하고 바보 같았던 형과 다르게 그는 제법 똑똑하고 부지런했었다고 한다. 하지만, 그는 서열상 왕이 되지 못했고, 항상 왕의 뒤에 설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그 옆에 있는 여인은 그의 아내인데, 자신의 조카 (까를로스 4세와 마리아 루이사 사이에 딸 마리아 아말리아)이다. (왕실의 순혈을 유지하고자 가족혼이 일반적이었다.)

결혼한 지 3년 만인 1798년 마리아 아말리아는 죽었고, 고야가 가족 초상을 그리기 시작할 때는 1800년 봄이었다.

그는 왜? 죽은 여인을 가족 초상에 등장시켰을까?

왕과 왕비의 14명의 자녀들을 모두 그려 넣지도 않았기에 왕실 가족 모두에 대한 기림과 존중으로 그려 넣었다고 하기에 설명이 부족하다.

다른 이유가 있었을까? 다음 인물도 보자.

 

페르난도 7세와 마리아 안또니아

 

맨 왼쪽 끝에 서있는 인물이 까를로스 4세의 아들이자 (나폴레옹의 형 호세 보나파르트 중간 통치) 다음으로 스페인의 왕이 되는 페르난도 7세이다.

그런데, 그 옆에 있는 여인이 흥미롭다. 모든 사람들이 정면을 응시하며 자신이 누구인지 들어내고 있는데 이 여인만이 고개를 돌리고 자신이 누구인지 알 수 없게 하고 있다.

그녀가 누굴까? 페르난도 7세의 약혼녀 마리아 안또니아일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추정일 뿐이다. 약혼녀이지만 결혼할 때까지는 알 수 없으니 (유럽 왕실의 혼인관계는 정치적인 상황에 따라 바뀌는 경우가 빈번했다.) 얼굴을 확실히 드러내지 않았다는 이야기가 있다. 그림이 그려질 당시가 1800년이고 두 사람의 결혼은 1802년이니, 혼인까지의 기간 동안 변수가 얼마나 많이 있을 수 있겠나? 그리고, 나중에 결혼하게 될 마리아 안또니아는 까를로스 4세의 조카이기도 했고, 페르난도 7세와 사촌지간이었다. 굳이 얼굴을 감출 필요가 있었을까?

그렇다면, 고야는 그녀를 굳이 왜 그렸을까?

죽은 여인에 알 수 없는 여인까지?

 

까를로스 4세 가족 초상 속에 등장하는 가족의 수를 세어 보니 13명이다.

13이라는 숫자가 상징하는 부정적인 이미지가 있다.

부패하고 무능한 당시 스페인 왕실에 대한 고야의 생각이 숫자로 표현된 것이 아닐까?

 

오늘도 고야는 어둠 속에서 우리를 바라 보며 그림을 그리고 있다.

 

 

반응형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