익숙한 관성 대신 새로운 변화가 주는 편의에 더 먼저 반응하는 사람들을 얼리어답터라고 한다.
중세에는 하나님이 주는 영감에서
르네상스를 지나면서 실제를 그대로 담으려는 노력, 그리고, 최대한 똑같이 표현하는 것을 추구하게 된다.
하지만 카메라라는 신문물의 발명된 후, 더 이상 똑같이 그리는 것은 중요한 의미를 상실하게 된다.
그 후 사진이 표현할수 없는것을 추구하게 되고, 예술가의 관점과 사고, 추구점에 주요한 의미가 부여되게 된다.
현대미술의 시작은 인상주의로 출발한다고 본다.
인상주의가 주는 인상은 작품을 보게될 사람이 아닌 지금 보고 있는 사람으로 시선이 옮겨진다.
내가 보고 있는것, 화가가 느끼고 있는것을 표현을 함으로서 시선의 중요성이 강조되게 된것이다.
엘그레코의 작품의 대부분은 종교화가 차지하고 있다고 했다.
그의 작품은 당시 종교인들에게도 일부 비난을 받기도 하였는데 그 이유중 하나는 인체의 구도와 비율때문이였다.
우리는 몇 등신인가? 많은 이들이 완벽한 비율을 팔등신이라고 말하고 그러길 바라지만 정작 팔등신의 비율을 가진 이들은 일부의 몸매좋은 이들의 비율이고 보통은 칠등신정도가 아닐까 싶다.
많이 양보해서 팔등신, 구등신의 비율을 가진 이들이 있다고 보더라도 엘그레코의 작품속 인물들의 비율은 비정상적이다. 짧게는 십등신에서 십이등신의 비율의 인물들을 볼수 있다.
똑같이 그리는 것이 중요한 시대에 왜 그는 비정상적인 비율로 사람을 표현했을까?
고딕성당의 하나님을 향해 가고자 인간의 경외함을 표현한 쭉뻗은 건축물과 같이 인물들 역시 종교적인 표현일까?
한가지 확실한것은 그는 사람들이 보고자 하는 것을 그린것이 아니라 자신이 보는것, 그리고 보고자 하는 것을 그린것이다.
예수께서 부활하실때 사람들의 감정은 어떠했을까?
그를 믿는이들에게는 기쁨이, 그를 핍박했던 이들에게는 두려움과 거절이 있었을 것이다.
아래의 인물들의 모습을 보면 마치 모닥불이 타는듯한 흔들리고 비정상적이다.
이 또한 사람들이 그런 모습으로 움직여지는 것이 아니라 부활하신 예수를 경험한 사람들의내면의 감정을 어떻게 육체로 표현할것인가에 촛점을 맟추어 자신이 보고 싶고, 드러내고 싶은 대로 그린것이다.
내가 보는것, 표현하고 싶은것 나의 생각이 중시되는 현대미술의 시대를 추구한 얼리어답터는 진정 엘그레코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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