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을 그린다는 것은 영광 스럽지만 굉장히 떨리는 일이다. 24살의 젊은 화가 벨라스케스에게 왕의 초상화를 그리게 되는 기회가 찾아왔다.
실력을 뽐내 인정을 받을 수도 있지만 평생 후회로 남을 결과를 맞이할 수도 있다.
그런 기회가 누군가에게 주어진다면
자신의 능력을 발휘할 시간이 있다면
아마도 모두가 최선을 다해 신중히 그 일을 할 것이다.
실수하지 않기 위해서
모든 신경을 곤두세워 임할 것이다.
그런데 벨라스케스가 펠리페 4세를 처음 그린 이 그림에서는 그러한 긴장과 떨림이 느껴지지 않는다.
펠리페 4세는 1621년 3월31일
에스퍄나의 왕으로 즉위하였다.
유럽의 패권을 프랑스와 영국, 네덜란드와
같은 나라에 빼앗기긴 했지만
에스파냐의 위상은 아직도 높았다.
동쪽으로는 필리핀에서 서쪽으로는 남아메리카까지의 거대한 영토의 통치자라 해서
행성왕이라는 별명이 붙여졌다.
왕을 그릴 때는 권위와 능력을 최대한 표현한다.
권력을 상징하는 무기와 따르는 수많은 무리들, 그리고 그의 옷에 치장한 수많은 장식들.
위의 그림에는 그러한 장식, 무리 등은 보이지 않는다. 마치 사진관에서 사진 찍듯이 아무런 배경도 없이 자연스럽게 서 있는 왕만 있을 뿐이다.
벨라스케스는 당신이 왕입니다. 장식과 사람들의 치켜세워줌이 없더라도 왕입니다. 라고 표현하고 있다. 단지 허리춤에 합스부르크가의 상징인 파이어스틸과 명령을 내리는 조서 한장이면 족하다는 것이다. 왕의 권위와 위엄을 치장이 아닌 인물 자체로 표현한 것이다.
그런데, 자세히 보니 이상한 부분이 있다.
그려지고 나서 오랜 시간이 지난 후 그림에 흔적이 드러난 것이다.
왕의 오른쪽 다리의 오른쪽을 자세히 보라.
다리의 그림자가 보이지 않는가?
망토의 뒷부분을 보라. 망토의 그림자가 보이지 않는가?
벨라스케스는 왕을 그리다가 자신있는 구도가 떠올랐다. 어느정도 그림을 완성했지만 망설이지 않았다. 바로 그림위에 덧칠을 시작한 것이다.
다리를 좀더 오므리고 망토를 줄인 것이다.
구도가 더 좋아보였다.
그와 왕은 아직 오래된 신뢰의 관계가 아니다.
화가는 어찌보면 왕을 한두번 밖에 못 본것 일 수도 있다. 자칫하면 문제가 커질 수 있다.
자신의 앞날과 가족들의 미래가 걸린일 일수도 있다. 그런데, 스케치도 하지 않고 자신있게 그림을 그리다가 더 자신있는 구도가 떠오르자 바로 그림을 수정한 것이다.
벨라스케스의 대담함이 느껴지지 않는가?
24세의 대담한 화가의 도전은
최고의 스페인 화가라는 열매로 이루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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