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인 환불원정대-영수증만 있으면 OK
쭈뼛쭈뼛 마트 앞에서 들어갈까 말까 망설인다.
구매한 물건이 맘에 들지 않거나, 잘못 사간 물건 이거나, 하자가 있는 물건을 바꿔야 하는데, 자신이 없다.
어쩔 수 없이 돌아가야 하나? '그것도 못바꿔 왔다'고 혼나는 거 아닌가? 집에 가서 뭐라 변명할 지도 고민이 된다.
이럴때 '환불원정대'가 출동해 주면 좋으련만...
'왜 환불을 하려고 하는지' 설명할 생각에 눈 앞이 캄캄하다.
꼬치꼬치 캐물으면 어떡하지? '대체 뭐가 문제인지?', '고객님의 단순 실수는 책임질 수 없습니다.' 등 혼자 생각한 그들의 말에 어떻게 답변해야 할지도 고민이다. 단맛이 나는 줄 알고 여러개 구매한 죠리퐁 같은 과자가 무(無) 맛이라. 아무도 먹지 않을거 같은데, 안 뜯은 건 환불 가능하지 않을까? 그런데 뭐라 말을 해야 하지? 이건 단순 변심 인가? 실수 인가? 왜 확인도 안 해보고 여러개를 사버렸을까? 자책도 해본다.
1 유로도 아껴써야 할 처지인데, 이런 상황이 제일 난감하다.
큰 맘먹고 장만한 가전 기기가 작동하지 않을 때라면 조금은 더 당당(어떠한 이유에서 건 환불 요청을 한다는 건 긴장되는 일이다.)할 텐데...
센 언니들이 있다면 아무런 고민 없이 들어 갈 것 같은데, 이런 문제쯤이야 아무렇지도 않게 쉽게 해결해 줄 것만 같고, 그런 언니들이 뭉친다면 못 할 것도 없겠구나' 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환불원정대'가 인기가 많은 가 보다.
한번 쯤 상상했던 지금의 내가 아닌 '부케'로 변해 나 역시 그랬으면 하지만, 그건 TV 프로그램 에서나 가능한 일이다.
대리 만족은 가능하지만 내가 그렇게는 안 될 것 같다.
현실로 돌아와, 여기까지 와서 돌아가는 것도 부끄럽다.
여수에 사셨던 까막눈이 친구 할머니의 말이 떠오른다. "글 읽을 줄 알고, 말만 통하면 못 할게 뭐가 있냐고?"
왜 그런 말씀을 하셨을까? 백 프로 이해된다. 지금 내가 그렇지 못한 것 같다.
최대한 자연스럽게 자동으로 열리는 문 안으로 발은 들어 가고 있지만, 머리 속은 여러번 돌아섰다.
줄이 있는 것을 보니 시간이 벌어졌다.
머리 속에서 뭐라 얘기할까 다시 정리한다.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으니 그냥 돌아설까' 라고도 생각한다.
기다림이 긴장을 줄어 들게 해 주진 않는다. 심장의 박동은 생각과 다르게 한 박자 빠르게 띄는 것 같다. 헤모글로빈이 새끼 손가락 까지 못가고 심장 주변 에서만 서성이는 것 같아 영수증을 쥔 손바닥이 차갑다.
드디어, 차례가 되었다. 36.5도 보다 훨씬 낮을 것 같은 차가워진 손에 쥐고 있던 영수증과 물건을 내민다.
그리고, 생각했던 수많은 단어와 문장과 변명과 이유의 말이 아닌, "Quiero devolver(환불받고 싶어요)"라고 한다.
긴장된 내 모습(물론, 뛰어난 연기력으로 겉으로는 전혀 느낄 수 없겠지만)과는 다르다.
그런데 아무 것도 묻지 않는다. 혹시나 했던 인상 쓰는 얼굴이나, 싫은 기색도 없다.
영수증과 제품에 있는 바코드만 찍더니 바로 처리해 준다.
원하는 직장에 들어가기 위해 외웠던 수 많은 면접 사전 질문지가 무색하게, 시험장에 입장 하자마자 바로 '합격'얘기를 들은 것 같다.
살짝 식은 땀에 젖은 영수증과 새로운 환불 영수증이 내 손에 들려 있다.
끝났다. 순식간의 일이다.
정신 차리고 보니 뒤에 있는 중국인 아저씨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영수증과 물건을 내민다.
아니 한마디 하긴 했다. 중국어로...
그래도 환불 받더라.
스페인에서는 영수증을 버리지 않는게 좋다.
영수증은 여러모로 유용하게 사용된다.
내가 여기 돈을 쓰며 살고 있다는 증빙이 되기도 한다. (이건 거주권을 받을 때 사용되는 경우)
그리고, 영수증이 있으면 대부분의 제품들이 보름 안에 환불이 된다.
이유는 묻지 않는다. 뜯은 가전제품이나 입어보고 맘에 안드는 옷, 식품에 이르기까지 다 해준다.
영수증이 중요하다.
'환불원정대'의 센 인상과 말은 안 먹혀도 영수증은 먹힌다.
공항 자판기가 돈을 먹었을때
무엇을 무엇을 고를까요.. 딩.동.댕.
물 하나 자판기에서 고르는 것도 신중하다.
워낙 종류가 많아 고민이라기 보다는 복불복인 경우가 많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스페인 자판기는 돈먹는 하마다. 파는 것이 비싸거나 아님 너무 매력적이어서 돈을 계속 쓰도록 하는게 아니라 돈을 그냥 먹는다.
같은 자판기라도 어떤 물건은 잘 나오는데 어떤건 꼭 중간에 걸린다.
차라리 나오다 걸리면 기계를 흔들어서라도 꺼내보려 시도할 텐데 아예 물건은 그대로 나올 기미도 안 보이는데 이용해 주셔서 고맙단다.
기차역이나 공항 등에 있는 자판기의 제품들은 게다가 비싸기까지 하다. 그래도 불가피하게 이용해야 할 때가 있는데, 물을 못 가지고 들어가는 공항에선 비행기를 기다리다 음료나 물을 자판기로 어쩔 수 없이 사 먹게 된다. 시중에선 1유로도 하지 않지만 2유로라 하더라도 구매할 수 밖에...
조금은 비싸다 생각하며 비행기에서 음료를 제공해 줄 때까지 기다리자니 목이 마르다. 평소엔 식사 때 조차도 잘 안마시던 물이 이상하게 이럴 땐 더 마시고 싶다.
'목 마른 사람이 우물 판다'라나? 딱 이런 상황이다.
펑펑까진 아니어도 암튼 조금 눈물을 머금고 자판기 앞으로 간다.
지난번에 내 돈 먹은 그 자판기 와는 기종이 다른 세련된 외모에 물건들도 가득찬게 유리판 안으로 제품들이 잘 보이는 최신형 자판기다.
다양한 사람들의 제품에 대한 고민을 줄여 주려는 의도 인지 여덟 줄로 전시된 제품 라인 중 4라인이 같은 브랜드 물이다.
대충 한 줄 당 10개씩 놓여있으니 40개 중 어떤 번호를 눌러도 물이 선택된다.
이건 언어나 기술력의 문제도 아니다. 40여개의 번호 중 어느 것 하나만 선택하면 기다리던 물을 마실 수 있는 것이다.
혹여나 실수할까 한번 더 번호를 확인하고 버튼을 누른다.
30번부터 시작되는 번호에서 안전하게 중간번호 41번을 선택한다.
번호는 잘 선택했으니, 이제 아무런 걱정 말고 2유로를 넣어 달라고 한다. 동전을 넣기 전에 한번 더 확인하고 자신있게 투입한다.
힘차게 자판기가 움직인다. 역시 신식 자판기 답게 로봇팔이 움직인다. 투명 유리판으로 실시간 확인이 가능하다. 로봇공장 견학이 따로 없다. 정확히 41번을 향해 간다.
그리고 빈 손으로 돌아온다.
최첨단 로봇팔은 화려한 움직임만 선보이고 자동으로 기계들이 움직일 수 있다는 것만 확인했음 됐냐는 듯 제자리로 간다.
물을 선택했는데 로봇팔만 구경했다.
바로 옆에 사람도 잘 만 사가던데 이게 뭔가 싶다.
보통 이럴경우 세 부류의 사람이 있다.
1. 기계를 두드리고 흔든다. 운이 좋으면 두 개도 나온다. 그런데 이 방법은 옛날 기계에서나 먹혔다.
2. 망연자실 하며 주변을 둘러보다가 체념한다.
꼭 이럴 땐 기계를 발로 한 번 찬다. 돈 잃고 발만 아프다.
3. 침착하고 기계를 자세히 보면 반드시 담당자 연락처가 써 있다. 전화한다. 상황을 설명한다. 기계에는 고유번호가 있다. 그걸 알려준다.
진정한 최첨단은 여기에 있다. 원격으로 조정해서 원하는 물건이 나오게 해 준다.
말이 안되면 문자 WhatsApp로 해도 된다.
사진이라도 보내라.
다시 한 번 말하지만 스페인에서는 포기하면 안된다. 아무도 대신 챙겨주지 않는다. (같이 욕해주는 경우는 많이 있다) 스스로 챙겨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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